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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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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오는가?
식민지 상황 인식 주권상실의 국토(대유법) 광복상징 설의적 염원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희망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희망찬 자유의 현장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현실과 다른 역설적 상황을 인식
가리마의 사투리 향토적 시어 몽환적 심정으로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침묵을 강요당한 국토(의인법, 돈호법, 대유법)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나와 국토와의 일체감(영탄법)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 국토 주권 상실의 현실을 알고도 침묵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자조적 심정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국토와의 다정한 밀어(의인법)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중단 없는 전진을 다짐하는 자의식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자유 상징 수줍게 하늘 위에서 자유에의 동경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주권 상실 현실 속에서도) 대견스러움에 감동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곱은 비로
자연의 은총으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원관념 : 보리(미화법) 보리밭이 고운 비에 씻기어 출렁이는 모습 자연과의 일체감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빼앗긴 국토에 찾아 온 봄맞이 기쁨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빼앗긴 들 고운 비의 이미지와 비슷함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국토(도랑)에 대한 애정을 청각적으로 표현 국토(도랑)에 대한 애정을 시각적으로 표현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즐겁다고 너무 재촉하지(까불지) 마라 감정 절제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순박한 농촌 아낙네(여인 = 우리민족) 한국적(토속적) 이미지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국토 재건의 의지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
모성애가 담긴 국토 관능적 표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국토 재건의 행동 국토 재건의 기쁨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순진무구한 모습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자유를 갈망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자유 자조적 심정 답답한 심정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희망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봄맞이 기쁨 주권 상실의 슬픔(청각의 시각화 : 공감각적 이미지)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절망감 표현 자신도 모르는 알 수 없는 힘이 솟음을 느낌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화제 전환 국토는 빼앗겼지만 희망조차 빼앗길 수는 없다는 저항적 의지


해설과 감상
이상화의 대표작으로 34음보를 기저로 하고 있는 11연의 자유시. ‘가르마’, ‘삼단 같은 머리’, ‘들마꽃’, ‘아주까리 기름등 향토적 정감을 주는 시어를 사용하여 민족과 국토에 대한 애정을 비유적 심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처음과 끝 연은 객관적 현실 인식이 표출되고, 중간의 48연까지는 자연 친화의 내용이, 그리고 2,3연과 9,10연은 객관적 현실에서 내면 인식(봄의 전경과 자연 친화)으로 넘나드는 과정적 의식이 표현되어 있는, 의미상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1행으로 된 첫 연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국토 상실의 아픔을 부각시키는 역설적인 의문이며, 23연은 절망적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국토에 찾아온 아름다운 봄(자연)으로의 몰입 과정이 몽상적 분위기로 묘사되어 있으며, 46연은 종다리, 보리밭, 도랑이와의 자연 친화를 통해 자유’, ‘생명력’, 중단없는 의지, 새로운 출발에 대한 결의와 자신감을 표현했고, 78연은 이러한 의지가 노동 의지로 육화(肉化)되어 나타난다. 특히 내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는 앞 연에서 보여진 삶의 의지가 생생한 노동 행위로 연결되어 능동적이고 실천적인 저항 의식으로 나타난다. 8연은 호소력이 강한 부분으로써 울분과 국토애, 그리고 부활의지가 가장 뚜렷하다. 910연은 자연 친화에서 다시 현실 인식으로 넘어오는 과정으로, 이제까지의 행위(48)웃어웁다로 자조하고, 제 정신이 아니었던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사로잡혔음을 허탈해 한다.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은 국토의 봄과 일체를 이룬 기쁨과 식민지 상황 인식에서 오는 상반된 감정의 병존(감정의 교차)을 의미하고, ‘다리를 절며는 화자의 내면적 갈등이 드러나는 구절이다. 마지막 11연은 1연의 문제 제기에 대한 대답의 연으로, 표면적으로는 봄조차 빼앗기겠다는 절망적 현실 인식이 나타나 있으나, 그 이면(裏面)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국토에 찾아온 봄을 결코 빼앗길 수 없다는 화자의 저항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연이다.
이 작품은 주권과 국토를 빼앗긴 참담한 식민지 현실하에서, 흔들리지 않는 대지와 변하지 않는 대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민족혼의 살아 있음과 그 불멸함을 탁월하게 영상화한 작품으로, 주제는 국권 회복에의 염원과 현실적 갈등이다.
 
핵심 정리
성격 : 낭만적, 상징적, 저항적
구성
조국 상실의 현실 (1)
광복이 된 조국의 천지를 상상함 (2)
조국과의 일체감을 회복하고 싶은 심경 (3)
국토와의 친화감 (4)
풍요한 성장에의 감사 (5)
봄을 맞이하는 유별난 기쁨 (6)
동포와 일체감을 느끼고 싶음 (7)
국토에 대한 한없는 애착 (8)
현실을 재인식, 자신을 자조함 (9)
조국 상실의 현실 인식 (10)
제재 : 국권 상실의 현실과 봄의 들판
주제 : 국권 상실의 울분과 회복에의 염원
 
시어 풀이
가르마 : ‘가리마의 경상도 방언. 이마로부터 정수리까지의 머리털을 양쪽으로 가른 금.
답답워라 : ‘답답하여라의 사투리.
삼단 : [大麻]을 베어 묶은 단. 긴 머리채를 나타낼 때 쓰임.
깝치지 : ‘재촉하지또는 서두르지의 경상도 방언.
맨드라미 : ‘민들레의 영남 방언
들마꽃 : ‘들매꽃의 대구 지방 방언.
지심 : ‘의 사투리.
웃어웁다 : ‘우습다의 사투리.
풋내 : 새로 나온 푸성귀. 들에서 나는 풀냄새.
지폈나 보다 : ()이 내렸나 보다. ()이 통하나 보다.
 
 
작품의 이해와 감상
이상화 시인은 삶의 가치를 부정하는 우울한 낭만주의자로서 출발한다. 3·1 운동의 좌절이 가져온 결과였다. 그러나 20년대 중반부터 우리 문단은 냉정한 현실 인식을 회복하게 된다. 이 시도 그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작품의 핵심이 되는 것은 '빼앗긴 들'에 과연 참다운 삶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다.
1연에서 이 질문을 던지고 마지막 연에서 이에 대해 대답한다. 나머지 연들은 이러한 대답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대칭 구조로 되어 있는 이 시의 둘째 연과 마지막에서 둘째 연을 비교해 보면 흥미 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앞의 것이 이상이라면 뒤의 것은 현실이다.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은 열려 있는 조국 해방의 지평을 의미한다. 그 지평을 향해 '한 자국도 섰지 마라',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는 강박에 사로잡혀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꿈속을 가듯' 화자는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푸른 하늘 푸른 들'은 그에게 '푸른 웃음'이기도 하지만, '푸른 설움'이기도 한 것이다.
이상과 현실 속에서 그는 '다리를 절며' 걷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한 지식인이 느끼는 아픔이 '다리를 절며'라는 말로 표현되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그러한 아픔 속에서 발견한 것이 허황한 관념이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민중의 실체라는 점이다.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로 표현된 빈농(貧農)의 아내와 누이에 대한 뜨거운 눈물을 우리는 이 시에서 본다. 창백한 지식인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는 싱싱한 표현을 가능케 했으리라.
 
작품 이해와 감상(1)
국토를 빼앗긴 식민지하의 민족 현실을 노래한 작품. 몽상적 분위기에서 시작하여 현실에 대한 뼈아픈 깨달음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긴밀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열정적인 어조와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강렬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식민지 치하에서 나온 현대시 중 현실 감각의 날카로움과 뜨거운 정열이 결합된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꼽힌다. 작품의 핵심되는 문제는 제목이 보여 주듯이 빼앗긴 들에 과연 참다운 생명의 삶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마지막 연에서 이에 대해 답함으로써 수미 상관식 구조를 이루어 구성의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작품 이해와 감상(2)
이 시는 <나의 침실로>와는 상반된 세계를 보여 준다. 이상화가 카프(KAPE) 계열에 가담하면서 쓴 시로 사회 의식적 주제를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수준 작이다. 카프의 입장에서는 결함 많은 작품이지만, 카프 시가 주제만을 강조하여 시적 형상화에 실패한 점을 볼 때, 이와 같은 시가 지속적으로 제작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한편, 이 시에서 보다시피 이상화는 서정성에 바탕한 시인이었기 때문에 기질적으로 카프와는 동떨어진 시 세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카프 계열에서 이탈하는 현상을 불러오고 만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제목이 이 시의 주제를 바로 말해 준다. ‘빼앗긴 들은 상반된 의미를 지닌다. ‘빼앗긴 들은 현재 상황이며 은 기다리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봄이 오는가라는 의문사로 제시된다. 화자는 그 봄을 기다리지만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오기는 어려울 것이라 회의 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상황은 더욱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이 시는 외형적 구조 속에 내적 구조가 숨어 있다. 겨울이 가고 소생과 희망의 봄이 들판에 가득하여 싱그러움을 더하고 있는 계절이 주는 희망과 약동의 세계 속에 조국 상실의 암울한 상황을 딛고 새로운 희망의 세계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내적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찾아오는가? 들을 빼앗기면 그 들에 찾아오는 봄마저 상실할 줄 알았는데 봄은 그 들에 찾아왔다. 그러니 그 봄은 화자에게 새롭고 소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다시금 봄을 맘껏 누려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햇살을 받으며 푸르게 물든 들판의 논길을 따라 감격하여 걸어간다.
2, 그 감격은 고조되어 간다. 화자는 봄으로 가득한 천지에 완전 동화 되었다. 내 의사로 찾아온 게 아니라 천지의 부름으로 이끌려 온 것처럼 화자는 물아 일체감(物我一體感)에 흠뻑 젖어 있다.
36, 봄의 자연 하나 하나와의 교감을 노래한다. 바람은 봄을 맘껏 향유하기를 재촉하고, 종다리 소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처럼 그렇게 아름답고 예쁘게 명랑함을 자아낸다. 추운 겨울을 고맙게도 잘 이겨낸 보리밭은 비에 씻겨 상큼하고 생기 있고 깨끗하다. 내 머리마저 가뿐하게 할 정도로, 이 환희로운 봄을 느끼려면 쉼없이 가쁘게 걸어야 한다.
마른 논을 적시는 도랑이 명랑한 소리를 내며 구불 구불 흘러 간다. 나비, 제비는 어서 가자고 재촉한다. 그것은 화자의 마음을 짐짓 나비, 제비에게 의탁한 것이다. 맨드라미 들마꽃도 보고 지나가야 하고, 우리 아낙네들이 김매던 들이기에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7, 화자도 그 들에서 노동의 참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어한다.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노동의 힘겨움 끝에 오는 만족감을 누려 보고자 한다.
8, 흥분했던 마음으로 들로 향했던 의식이 갑자기 내면으로 향한다. 그저 들판에 가득한 봄에 취해 희열감에 가득했던 흥분이 가라앉으면, 엄연한 현실로 인식되는 시대적 상황, 나라 없는 땅에서 그 봄이 어떤 의미를 줄 것인가, 진정한 봄은 존재 하지 않는데, 겉으로 온 봄에서 과연 무엇을 찾는가. 들판을 걸어 어디로 찾아가려는 것이가? 이런 인식 끝에 자조(自嘲)섞인 절망감이 찾아오고야 만다. ‘우서웁다고 말한 것이 바로 자조적 절망감의 표출이다.
8, 바로 이런 절망감으로 논길을 걷는다. 계절의 순환으로 찾아온 봄, 푸르름, 풋내에 한껏 젖어, 이렇게 고맙게 찾아온 봄을 감격해 하면서도 또 진정한 봄이 오지 않은 슬픔을 아울러 안은 채 하루 종일 들을 걷는다. 봄 신령이 씌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들을 빼앗겨 어쩌면 이 봄의 생명감마저도 빼앗길지 모르겠다. 9연은 화자의 복합된 심정이 여실히 드러난 곳이다. 푸른 웃음과 푸른 설움이 뒤섞여 있는 화자의 심리를 읽을 수 있으며, 이 즐겁고 감격적인 봄의 정취마저도 빼앗길지 모른다는 절망감이 화자를 억누른다.
이상에서 각 연의 시 세계를 더듬어 보았는데, 향토적, 전통적 소재를 통해 국토와 조국에 대한 애정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 국토에 대한 사랑을 여성 이미지로 시화하여 정서적 친밀감과 살가운 애정을 드러낸 수작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보이는 사회적 관심도 서정성에 융화되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것은 초기의 경향시에 있어서 바람직한 태도였는데로 불구하고 이후 서정성이 박탈된 시가 양산된 것은 한국 시에 있어서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작품 이해와 감상(3)
시인 이상화(1901-1943)1920년대 식민지 시대의 비극적인 역사 상황 속에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그는 백조동인으로 문단에 참여하여 박종화, 나도향, 현진건 등과 교유하면서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통분을 격렬한 정조로 노래한다. 이상화의 저항적인 의식은 기미 독립 만세 운동에서부터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대구에서 학생 독립 운동에 참여하였고, 독립 운동의 주동자로서 활동한 바 있다. 그러나 만세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깊은 좌절감에 빠져들었고, 그 정신적인 좌절을 딛고 일어서면서 문학의 길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상화의 시에는 두 가지의 시적 경향이 자리잡고 있다. 하나는 퇴폐적인 정서와 병적인 관능이다. 이것은 시대적인 상황에 대한 시인의 정신적인 대응 방식의 하나다. 물론 그가 관심을 보였던 프랑스 상징파의 시적인 영향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침실로와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시적 열정은 마돈나라는 시적 대상을 놓고, 오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시인의 애절한 심사가 잘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환상과 관능으로 휩싸여 있다. 그러나 그 관능적인 요소들이 모두 대상에 대한 신비화를 돕고 있기 때문에, 시적 열정 자체를 더욱 고양시키고 있다 할 것이다.
이상화 시의 또 다른 경향은 저항적인 의식이다. 이것은 앞의 열정이나 퇴폐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의 시적 경향 자체가 모두 민족의 비극적인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관능에 머물러 있거나 퇴영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시적 의지를 구현한다. 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비롯하여 선구자의 노래, 역천등에서 이러한 특징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상화는 1920년대 중반 한때 계급 문학 운동에 가담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모순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였고, 일제의 탄압이 더욱 가혹해진 1930년대 중반에는 중국 일대를 방랑하면서 식민지 백성의 한을 토로하였다. 그 후 다시 귀국하여 고향인 대구에서 청년 학도들을 가르치면서 민족혼을 심어 주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조국 광복에 대한 그의 간절한 꿈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그는 병으로 1943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1920년대 시인 김소월의 비극적 현실 인식과 한용운의 역사에 대한 신념 사이에서 이상화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상화의 현실 감각은 김소월이나 한용운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보다 더 비장하고 절망적이다. 김소월이나 한용운의 경우에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서정 자아가 이상화의 시에서는 파멸하는 존재로 부각되는 경우도 많다. 무자비한 고통의 현실을 이상화는 어둠의 동굴, 죽음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시적 주체로서의 서정적 자아는 어둠의 현실을 등지고 동굴과 밀실 속으로 도피하고 격앙된 어조로 삶의 구원을 희구한다.
이상화의 시에서 시적 주체가 어둠의 현실을 뚫고 현실의 한복판에 나서는 경우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서정 자아는 강인한 의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시대 상황 자체를 고통스러워하면서 자신을 세우고자 한다. 비록 나라를 빼앗겨 압제의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민족혼을 새롭게 불러일으켜 세울 수 있는 봄마저 빼앗길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가 담겨 있으며, 그 비장미가 곧 저항적인 정신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에서 당대의 상황은 압제의 현실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어둠 속에도 봄은 찾아온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질서이다. 이 섭리를 놓고 시인은 빼앗긴 땅에 찾아올 광복의 봄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봄에 신명 잡힌 것처럼 다시 일어선다.
절망의 현실 속에서 주체를 바로 세우는 작업은 3·1운동 이후 민족사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아를 바로 세우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글쓴이 : 권영민 / 1948년생, 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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