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20년대 시
가. 개관
3.1 운동의 실패, 좌익 이데올로기의 등장, 본격적인 서구 문예 사조의 유입 등이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3.1 운동의 실패로 민족적 좌절을 겪었으나 일제가 '문화 정치'로 전환함으로써 1920년 <조선 일보>와 <동아 일보>가 창간되었고, <창조>, <백조>, <개벽> 등 동인지와 종합지가 간행됨으로써 문학의 저변이 확대되었고 전문 문학인의 등장으로 문학적 기반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 이 시기의 특징으로는
◈ 본격적으로 현대 문학이 모색되었다 : 현대 문학의 다양한 경향을 실험하고,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현대 문학을 모색했다.
◈ 예술로서 문학을 추구했다 : 문학을 계몽의 수단으로부터 분리시켜 예술 본연의 문학으로 위상을 정립시켰다. 이 시기의 전반기에는 낭만주의의 경향이었으나, 후반기에는 이를 극복하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사실주의의 경향을 보였다.
◈ 계급 문학이 대두하고 국민 문학파가 등장하였다 : 좌익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신경향파'가 등장하자,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우리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국민 문학파'가 등장하여 '신경향파'를 계승한 '카프'와 대립하였다.
다. 감상적 낭만주의의 유행
3․1 운동의 실패는 지식인들 사이에 엄청난 좌절감을 가져왔고, 때마침 들어온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영향으로 우리 시단은 감상적(感傷的) 낭만주의 시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1920년대 초의 이러한 경향은 박영희, 홍사용, 이상화 등의 시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들의 시는 과다한 감정의 노출 및 현실 도피의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꿈이나 밀실, 병실, 동굴, 죽음, 님, 영원, 눈물 등과 같은 시어를 주로 사용하여 좌절감과 현실도피의 경향을 드러내었습니다. <폐허>나 <백조>의 동인으로 활동했던 이들은 그러나 1920년대 중반에 신경향파 문학이 소개되면서 좀더 현실을 대하는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합니다.
라. 경향시의 등장
경향시란 사회주의 사상에 많이 기울어진 시란 뜻입니다. 6.25전쟁으로 인하여 우리 민족에게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는 우리에게 악마의 사상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적 지배와 지주와 소작인과의 갈등 등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사상으로서 지식인들에게 크게 어필했던 사상이었습니다. 억압된 지배구조와 부의 불평등 등을 투쟁에 의하여 해결하려는 사상인 만큼 좀 거칠었습니다. 그러나 민족 문학의 큰 시각에서 보면 계급 문학의 시들도 일정한 의미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즉, 경향파 시들의 언어는 매우 거칠지만 시의 형상화 영역을 넓힌 점만은 인정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시가 개인의 정서와 함께 사회 사상을 반영하고 계급적 성격도 그려낼 수 있다는 새로운 영역을 발견한 것입니다.
마. 국민문학파의 시조 부흥운동
1926년 무렵부터 일부의 문학인들 사이에는 우리의 옛 시 형식 중에서 가장 전통 적인 양식인 시조를 현대적으로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이 움직임은 한편으로는 일제의 지배 아래 점차 쇠퇴하여 가는 우리의 문화를 붙들어 맴으로써 시들어 가는 민족혼을 되살리자는 문화 운동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카프 계열의 문학활동에 반대하는 취지의 문학활동이었습니다. 대표적 인물은 최남선, 이병기, 이은상 등의 소위 국민문학파였습니다. 이들은 '민족혼', '민족의식', '조선심'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활발한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시조부흥운동이 힘을 얻자 좀더 이론적 체계를 다듬어 현대 시조를 확립하는 밑바탕을 이루었습니다.
2. 1930년대의 시
가. 계급주의 문학의 퇴조와 순수시의 대두
1920년대의 문단을 휩쓸었던 카프계열의 문학운동이 일제의 검열과 사상 탄압에 점차 그 세력이 약화됩니다. 그 동안 카프계열의 시가 보여줬던 선전 선동 위주의 전투적 시와 도식적이고 이념 지향적인 경향에 대한 반발을 느껴왔던 사람들이 이때를 맞이하여 새로운 방향의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바로 순수시입니다. 1930년대의 시단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박용철, 김영랑, 정지용 등이 중심이 된 시문학파의 등장입니다. 이들은 시에서 일체의 이념적, 사회적 관심을 배제하고 오직 아름답고 섬세한 언어의 조탁과 그로 기인한 서정성만을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 세계에 몰입되어 언어의 조탁에만 관심을 가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이들에 의해 우리의 현대시가 언어와 형식면에서 한 차원 성숙해졌다는 점은 널리 인정받고 있습니다.
나. 다양성과 실험성
1930년대에 들어와서 우선 눈에 띄는 점은 다양한 유파의 출현과 시의 형식과 내용 면에서의 과감한 실험정신입니다. 초기에는 순수시파, 중기에 모더니즘파, 후기에는 생명파가 나름대로의 충분한 이론과 방법을 동원하여 창작활동을 시작하기 시작하여 본격적인 현대시의 기틀을 마련하며, 그 뒤를 이어 청록파가 등장합니다.
다. 시문학파
박용철, 김영랑, 정지용으로 대표되는 시문학파는 작품을 이데올로기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프로 문학 운동에 반발하여 나타난 유파입니다. 이들이 주장한 순수 문학이란 문학을 어떠한 목적으로부터 해방시켜 문학 자체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들은 시어에 대한 자각을 구체화하여 시적 언어에 대한 연구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박용철은 평론으로 이들 시문학파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으며, 김영랑은 실제적인 작품 활동을 통해 시문학파의 시가 우리 시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라. 모더니즘파
우리 문단에서 본격적인 모더니즘 운동이 나타난 것은 1933년경 김기림이 모더니즘 문학 이론을 소개하면서부터입니다. 이들은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시하는 주지주의 문학을 주장하고, 시의 회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기림, 김광균, 정지용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영미(英美) 계열의 주지주의 모더니즘을 받아들여 이미지즘 시를 썼으며, 이들과는 달리 이상(李箱)은 프랑스 계열의 초현실주의적인 시를 썼습니다. 이들에 의해 우리 시에는 기계 문명과 도시가 시적 주제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국적인 요소도 중요한 표현의 한 요소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이들의 시는 너무 기교에만 집착했으며 사상성을 등한시하였다며 생명파의 강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마. 생명파(生命派)
생명파는 순수시파와 모더니즘파의 감각적 기교주의가 인생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나타난 유파입니다. 모더니즘의 시들이 주지주의적 성격과 도시 문명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시가 건조해지고 형식화된 것을 비판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 문제, 살아있는 생명의 문제 등을 즐겨 다루었습니다. 1936년에 발간된 <시인부락(詩人部落)>의 동인인 시인 서정주, 소설가 김동리를 중심으로 성립하였으며 유치환과 윤곤강, 신석초는 동인은 아니지만 유사한 성향의 시를 많이 발표했기 때문에 '생명파'의 범주에 넣습니다.
3. 1940년대의 시
가. 개관
이 기간은 흔히 우리 문학사의 암흑기로 부릅니다. 대동아 전쟁의 막바지에서 일제가 최후의 발악을 하던 시기인 만큼,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의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끌어가고, 우리의 할머니들을 정신대로 끌어가고, 집안의 놋쇠그릇은 남김없이 총알 만든다고 휩쓸어가고, 기름 만든다고 송진 긁어모으기 운동 벌이고, 우리 나라 사람들 모두 일본식으로 창씨개명을 시켰습니다.
그 중 가장 못된 짓은 우리말과 글을 못 쓰게 하여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한 것입니다. 우리말로 된 모든 신문과 잡지의 발행을 중지시키고 정 글을 쓰고 싶으면 일본어로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인 많은 문인들이 일제에 협력하는 자세로 글을 쓰게 되는 가슴 아픈 시기도 바로 이 때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독립에의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나중에 많은 후회를 했습니다. 물론 되지 않은 변명으로 일관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가장 어두운 어둠은 밝음과 통한다는 경구를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육사와 윤동주는 이러한 암흑기의 마지막 밤을 환하게 밝힌 등불과 같았습니다. 두 분 모두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는 비운을 겪었지만 이분들의 뜻과 작품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입니다. 또 토속적인 농촌과 서민들의 빈궁한 생활상을 다룬 백석과 이용악 등의 시들이 이 시기에 생산되었답니다.
나. 특징
◈ 민족 문학의 암흑기 : 중 일 전쟁(1937) 이후 완전히 전시 체제에 돌입한 일제는 우리의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고, 민족혼을 일깨울 문자 행위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우리 문학계는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 저항문학 : 일제의 탄압으로 일부 문인들은 일본의 국책에 부응하여 안일을 도모하였으나, 일부는 붓을 꺾고 은거하였고 일부는 끝까지 기개를 굽히지 않고 작품을 통하며 적극적인 저항 문학 활동을 폈습니다.
다. 문학의 양상
◈ 허무와 절망의 형상화 : 폐쇄된 현실 상황으로 인해, 인생에 대한 회의, 절망, 허무를 주조로 한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어, 삶의 의의를 상실한 절망 상태의 인간형이나 예술에만 탐닉하는 극단적인 유미주의자, 정신적인 무능력자를 다루었습니다.
㉠ 시 : 서정주의 '바다', 박두진의 '푸른 하늘 아래'
㉡ 소설 : 최명익의 '장삼이사(張三李四)', 김동리의 '완미설(玩味設)', '솔거'
◈ 전통에 대한 관심 표출 : 「문장」지를 중심으로 고전이 소개되는 분위기와 더불어, 민속이나 전통을 작품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 시 : 김영랑의 '춘향'
㉡ 소설 : 김동리의 '황토기', '솔거'
◈ 저항과 자기 성찰의 문학
광복에의 의지 : 탈출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남성적인 건강한 목소리로 조국의 밝은 미래를 노래하였습니다. 이육사의 '광야', '절정' '청포도' 등이 그 예입니다.
자화상적(自畵像的)인 고뇌(苦惱) : 자기가 몸담고 있는 시대에 대한 고민이 좀더 이지적으로 나타나, 눈물과 참회로 자화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원죄(原罪)에 의한 '부끄러움'이라는 기독교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예언자적인 지성과 의지를 잃지 않은 윤동주의 시가 대표적입니다. '서시(序詩)', '십자가', '참회록', '또 다른 고향', '쉽게 씌어진 시' 등이 있습니다.
◈ 자연 친화의 시 : 「문장」지를 통해 비슷한 시기에 추천된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과 율격으로 한국적 자연을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1930년대의 전원시파에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경향은, 정조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국어 말살 정책이 자행된 극단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 우리말을 지켰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큽니다. 그러나 발표되지는 못하였고, 해방 이후에야 발표되었습니다. 광복 후 이른바 '청록파'로 분류된 이들은 우리 시를 대표하는 현대시의 큰 줄기를 이루었습니다.
① 박목월 : 동양의 이상향인 도화원(桃花園)과 같은 선경(仙境)을 추구했다. '청노루', '산도화(山桃花)', '불국사(佛國寺)' 등.
② 박두진 : 기독교(구약성서 이사야서)적 평화 사상으로 자연을 추구하며 밝아올 새 역사의 소망을 노래했다. '향현(香峴)', '해', '어서 너는 오너라' 등.
③ 조지훈 : 우리 전통 - 멸망하는 것에 대한 짙은 향수(鄕愁), 선(禪)과 은일(隱逸)의 경지에 침잠했다. '고풍의상(古風衣裳)', '봉황수(鳳凰愁)', '완화삼(玩花衫)', '낙화('落花)', '고사('古寺)', '범종('梵鍾)' 등.
라. 문예지
◈ 문장(文章) : 1939년 2월에 창간된 월간 종합 문예지. 범문단적인 작품 발표는 물론이고, 고전 발굴에도 주력했습니다. 특히 신인 추천 제도를 두어, 광복 후 우리 문단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많은 신인들을 발굴했습니다. 신인들은 이병기를 비롯한 각 분야의 중진들에 의해 추천되었습니다.
◈ 인문 평론(人文評論) : '1939년에 창간하여 1941년에 「문장」과 함께 폐간된 월간 문예지. 최재서가 주재하면서 특히 비평 분야에 강세를 보였고, 작품 발표에도 많은 지면(紙面)을 할애했습니다. 최재서의 '서사시, 로만스 소설'을 비롯한 소설론이 활발히 전개되어, 소설 장르를 규정하려는 논의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국민 문학」으로 개제(改題)되어 우리말과 일본어를 섞어 간행하다가, 결국 일본어로만 발행되는 친일 어용지(親日御用織)로 전락해버렸습니다.
4. 해방이후의 시문학
가. 시대개관
해방이 되고 난 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주어집니다. 첫째는 일제 말기에 있었던 지식인들의 친일 행위에 대한 처벌과 청산. 둘째는 좌익과 우익의 극한 대립이 빚어 낸 갈등의 극복이었습니다. 첫째 숙제는 어렵게 되어버립니다. 해방되기 전에 권력을 쥐었던 축들이 해방 후에도 그대로 권력을 쥐어버렸으니 어렵게 된 것입니다. 둘째 숙제는 더 어렵게 됩니다. 이판사판으로 대립하다가 결국 6.25 전쟁으로 막을 내리고 맙니다. 이러한 극한의 현실 속에서 민족 문학의 방향성을 찾기 위한 많은 토론과 논쟁이 있었고, 좌우 이데올로기를 사이에 두고 심각한 대치상태를 유지하였습니다. 이러한 대치상태는 좌익에 대한 정부의 탄압과 그로 인한 많은 시인들의 월북으로 차츰 우익 진영의 순수 문학 쪽으로 대세가 기울게 됩니다. 이것은 결국 1930년대의 순수시, 인생파, 자연파들을 계승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됩니다.
나. 이 시대의 시적 특징
◈ 민족주의적 경향 : 민족주의 계열에서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애정을 주조로 하는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박종화의 '청자부', 정인보의 '담원 시조', 김억의 <민요시집>, 김상옥의 <초적(草笛)> 등이 있습니다.
◈ 청록파의 시집 발간 : 해방 전에 등단하여 자연과의 교감을 추구하던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이 <청록집(1946)>을 내어 해방 전의 시와 해방 후의 시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 유고 시집 발간 : 일제 강점하에서 끝까지 민족혼을 노래했던 위대한 시인들의 시집이 간행되어 시단에 충격과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육사의 <육사 시집>, 이상화의 <상화 시집>,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이 그것입니다.
◈ 생명파 시집 발간 : 1930년대 후반, 생명 의식의 앙양을 부르짖고 나왔던 생명파의 시인들이 시집을 내놓아, 이후 시사(詩史)의 중요한 골격을 이루었습니다.
◈ 모더니즘이 계승 : 1930년대 중반 모더니즘 경향을 계승해 도시와 문명을 소재로, 시각적 이미지와 관념의 조화를 시도한 '후반기' 동인이 생겨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이라는 공동 시집을 간행하였습니다. 김경린, 박인환, 김수영 등이 대표적 문인입니다.
5. 1950년대 전후(戰後)의 시문학
가. 시대개관
기다리던 해방이 되자마자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가 서로 다투다가 결국 전쟁으로 결론을 내게 되었습니다. 6.25전쟁은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터무니없는 전쟁이었습니다. 단지 생각이 틀리다며 벌인 혈육간의 살육전이었기에 우리 민족은 더욱 큰 아픔을 느껴야 했습니다. 이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만으로 같은 민족을 죽여야 하는 상황은 인간의 본질과 삶 자체에 대한 깊은 회의를 낳았습니다. 이러한 상처는 문학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전투를 격려하기 위한 작품들이 창작되기도 하고, 전쟁에서 느끼는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담는 작품들이 나오는가 하면, 전쟁 후에도 그 상흔으로 아파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 전후 문학의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나. 전쟁 체험과 시
참혹한 전쟁에 참여했던 시인들이 직접 전쟁을 체험하고 느낀 소감이나, 전쟁의 참혹상, 그 광기 등을 그린 많은 시들을 발표했습니다. 전쟁 체험을 시로 옮기는 과정에서 전쟁의 비극을 고발하고, 전후의 새로운 가치관 또는 인간상을 탐색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한결같은 주제는 바로 전쟁으로 철저하게 훼손된 인간성의 회복과 휴머니즘의 복원이었습니다.
다. 모더니즘 시
사상 대립으로 인한 전쟁은 현대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 일으켰으며, 이러한 회의와 반성을 문학에 반영한 것이 1950년대의 모더니즘 운동입니다. 이 모더니즘 운동은 전쟁 전의 '후반기' 동인들인 김경린, 박인환, 김규동, 조향 등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으며, 전쟁에서 비롯된 불안과 공포, 허무, 전망 없는 사회에 대한 현실 의식을 모더니즘의 방법과 정신을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주요 작가로는 박인환, 김규동, 김수영, 김춘수, 등이 있습니다.
라. 전통적 서정시의 등장
전쟁시, 모더니즘 시와 함께 전통적 서정시 또한 이 시기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매김됩니다. 이 시들은 전쟁의 체험을 내적으로 승화시키며 보다 전통을 바탕으로 한 서정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서정주를 필두로 박재삼, 김현승, 박용래 등의 시인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6. 1960년대의 시문학
가. 시대개관
전쟁에 이어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라는 격동을 겪고 난 후 이 사회는 음울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이에 대해 이 땅의 지식인들은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끝없는 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문학은 어느 때보다도 현실 참여의 문제가 심각한 당면 과제로 제기되었고,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현실 참여적인 문학과 함께 순수 문학에 대한 관심 또한 더욱 높아지면서 참여파와 순수파와의 문학논쟁이 수없이 되풀이되었습니다. 비록 소모적인 논쟁의 성격도 있었지만, 그럼으로써 문학의 본질과 방법론에 대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나. 특징
♠ 참여시 : 군사 정권이 들어서고 강압적인 분위기가 사회를 뒤덮었던 이 시기에 순수․참여 논쟁을 통해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많은 시인들이 참여 문학 쪽에 동참하였습니다. 시인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학 속에만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현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고발하면서 현실 변혁을 위해 노력하는 비판적 지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습니다. 이들은 참여시를 통해 사회 부조리와 비민주적인 정권, 현대 자본주의 문명에 의한 비인간화 등을 비판하였습니다. 아울러 이들은 민족 분단의 아픈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기억해야 할 시인으로는 김수영, 신동엽, 이성부, 신경림, 조태일, 김지하 등이 있습니다.
♠ 순수시 : 어두운 현실을 맞아 맞서 싸우고 고발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참여시파와는 달리 순수시파는 사회 현실과는 무관하게 시의 본질과 예술성, 순수성을 주장하며 문학활동을 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여기에 동참한 시인들은 서정주, 박목월, 박재삼, 김춘수, 전봉건, 문덕수, 황동규 등이 있습니다.
7. 1970년대 이후의 시문학
가. 시대적 배경
1970년대는 군사 독재 정권이 택한 개발 독재 전략에 따라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이다. 이에 따라 경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일체의 시민적 자유에 대한 억압이 가중되었고, 빈부의 격차가 심화된 데 따라 사회적 갈등이 격화되었다.
이와 함께 유신 체제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달리 말해 한국 사회의 명암이 뚜렷하게 엇갈린 시기가 바로 1970년대였다. 시도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이른바 '민중시',혹은 '참여시'가 본격적으로 흐름으로 대두되었다. 이와 함께 해방 후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서 모더니즘 계열의 시도 꾸준히 발전을 했다.
나. 시의 특징
1970년대에 들어서서도 1960년대의 순수-참여 문학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시의 현실 참여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이는 특히 시적 대상과 시적 인식의 범주를 확정하는 문제, 그리고 시적 형상화의 방법과 연관된 것으로, 참여파의 시인이나 순수파의 시인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순수와 참여의 이분법적 인식이 어느 정도 극복되고 시와 현실의 간격이 상당히 좁혀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 점에서 1970년대는 시가 상상력의 소산임에 틀림이 없지만, 시의 토대가 되는 경험 세계와 일상적인 삶의 세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 시의 경향
(1)민중시
<1>김지하의 <오적>(1970) : 전통적인 운문 양식인 가사,타령,판소리 사설 등을 변용함으로써 새로운 장시의 가능성을 선보인 담시이다.
<2> 조태일의 <식칼론>(1970)과 <국토>(1975) :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의 이미지를 빌려 시대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정신을 형상화한 <식칼론>에 이어 분단된 현실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억압된 민중의 삶에 대한 관심을 연작시로 표현한 <국토>를 발간했다.
<3> 신경림의 <농무>와 고은의 <문의 마을에 가서> 신경림의 <농무>에서 주로 그려지는 것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된 농촌 현실과 농민들의 절망과 분노이다.
고은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삶에 대한 회의와 허무 의식을 주로 표현했던 1960년대의 시경향에서 벗어나 부정과 불의로 가득찬 현실에 대한 저항과 투쟁의 의지로 가득찬 시들을 발표하게 된다.
<4> 이성부의 <백제형>과 최하림의 <우리들을 위하여>(1976)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밀도 있는 언어로 표현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이성부의 <백제행>은 가혹한 현실의 억압 속에서 절망하면서도 그 억압과 모순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노력을 보여 주었고, 최하림의 <우리들을 위하여>는 가혹한 시적 상황을 설정하고, 이를 이겨 내려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 준다.
<5> 김준태의 <참깨를 털면서>(1977), 이시영의 <만월>(1976),정화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 이들의 시도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과 민중들의 삶에 대한 강렬한 애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2) 모더니즘적인 경향
<1> 황동규의 <삼남에 내리는 눈>(1975) : 상상력의 역동성을 강조한 황동규는 유신 치하의 정치적 폭력을 암시하는 가혹한 시적 상황을 설정하고, 그것이 인간의 정신과 꿈을 얼마나 황폐화시키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데 주력했다.
<2> 장현종의 <사물의 꿈>(1972) : 언어의 의미 표상과 감각성을 토대로 활으로써 시적 정서를 풍부하게 표현했다.
<3) 오규원의 <순례> : 상품 사회에서 타락한 언어를 되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일상적인 감각을 거부하고 기지에 찬 역설을 주로 구사하였다.
<4> 이승훈의 <환상의 다리>(1976) : 이승훈은 초기 시에서부터 언어 자체를 대상화하고, 개념화를 거부하는 양상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그의 시는 외부의 대상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 연상에 의해 자신의 내적 직관 그 자체를 시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8. 1980년대 이후의 시
가. 개관
1980년대에 들어서는 노동자의 삶과 분노, 한을 생생하게 노래한 노동시, 민족의 통일을 지향하는 통일시가 등장하였다. 1990년대 이후의 시의 경향은 한 마디로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운데 현실을 적극적으로 노래하던 민중시, 노동시들의 급격한 퇴조 이후 개성을 강조한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하였다. 도시 문명의 허무를 노래한 시들이 다수 등장하였으며 가상 현실, 인터넷, 각종 매체 등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개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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