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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특강

수능특강 문학 공방전 정리 및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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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특강 문학 공방정 정리 및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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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孔方)의 자()는 관지(貫之)이다. 공방이란 구멍이 모가 나게 뚫린 돈, 관지는 돈의 꿰미를 뜻한다. 그 조상은 일찍이 수양산(首陽山) 숨어 살아서 세상에 쓰인 적이 없었다.=> 아직 돈이 유통되지 않은 시대.

그는 처음 황제 시절에 조금 쓰였으나, 성질이 굳세어 세상일에 그리 세련되지 못하였다. 어느 날 황제가 관상가를 불렀다. 그가 한참 동안 관상을 보고 말했다.

산야(山野)의 성질=>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성질. 돈의 재료인 구리, 철은 다듬어지지 않아 보잘 것 없다는 뜻. 이라 쓸 만하지 못하오나, 만일 폐하가 만물을 조화하는 풀무와 망치로 때를 긁고 빛을 갈면=> 돈의 제작 과정 그 자질이 마땅히 점점 드러날 것입니다. (본래 왕이란 존재는 그것이 무엇이든 쓸모가 있게 하는 분이오니, 원컨대 폐하는 저 단단한 구리와 함께 내버리지 마옵소서.)

=> 돈을 주조하여 유통시키면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라는 의미

이로 말미암아 세상에 그의 이름이 나타났다. 그 뒤에 난리를 피하여 강가의 숯 굽는 거리로 이사하여 거기서 눌러살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 ()=> 중국 신나라 때 왕망이 주조한 동전의 이름이 화천이었음. ()나라의 재상으로 나라의 세금 매기는 일을 맡았다. 공방은 밖은 둥글고 안은 모나며,=> 돈의 생김새를 묘사한 것이면서 돈의 이중성을 묘사한 것이기도 하다. 때에 따라 그에 맞게 잘 변하더니 => 돈은 처세에 능하구나~ ()나라에 벼슬하여 홍려경(鴻臚卿)이 되었다. 그때에 오()나라 왕 비()가 교만하고 참람하여 권세를 도맡아 부렸는데, 공방이 그에게 붙어 많은 이득을 보았다.=> 권세를 이용해 돈을 많이 모았구나~

무제(武帝) 때에 천하의 경제가 궁핍하여 나라의 창고가 텅 비었으므로, 위에서 걱정하여 공방에게 부민후(富民侯)=> 백성을 풍요롭게 하는 일을 맡은 관리=> 주인공을 의인화하여 벼슬을 받는 상황을 연출함. 라는 벼슬을 주어 그의 무리 염철승(鹽鐵丞) ()과 함께 조정에 있었는데, 근이 매양 형님이라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공방을 몹시 존경했다는 의미

공방의 성질이 욕심 많고 더러워 염치가 없었는데,=> 사람이 돈에 대한 탐욕을 지니고 있음을 비판하는 의도. 이제 재물과 씀씀이를 도맡게 되니 본전과 이자의 경중을 저울질하기 좋아하였다. 나라를 편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질그릇, 쇠그릇을 만드는 기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여, 백성과 더불어 작은 이익이라도 다투었다.

=> 돈이 이자 증식의 수단이 되었다.

물건값을 낮추어 곡식을 천하게 하고, 재화를 중하게 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근본인 농업을 버리고 끝인 상()을 좇게 하여 농사에 방해를 끼치므로 관리들이 많이 상소하여 논했으나 위에서 듣지 않았다.=> 돈의 부정적 폐단에 대해 비판함. 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보인다.

공방은 또 재치 있게 권세가들을 잘 섬겨 그 문에 드나들며 권세를 부리고,=> 돈과 권력이 손을 잡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벼슬을 팔아 올리고 내침이 그 손바닥에 있으므로 벼슬아치들이 절개를 굽혀 그를 섬겼다. 이에 곡식을 쌓고 뇌물을 거둔 문서와 증서가산 같아 이루 셀 수 없었다.

=> 돈으로 매관매직, 지조를 굽힘, 돈이 부정 축재의 수단으로 사용.

그는 사람을 접하고 인물을 대함에도 어질고 어리석음을 묻지 않고, 비록 저잣거리 사람이라도 재물만 많이 가진 자면 다 함께 사귀고 통하였다. => 돈만 있으면 사람을 사귈 수 있다. 돈이 사람을 사귀는 기준이 되었음. 때로는 혹 거리의 못된 젊은이들과 어울려 바둑 두기와 투전하기를 일삼고 뒤섞이기 좋아하므로 사람들이 말하였다.

공방의 말 한마디는 그 무게가 황금 백 근만 하다.”

=> 공방이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의미, 돈이 정말 큰 힘을 발휘했다.

원제(元帝)가 자리에 오르자 공우(貢禹)가 글을 올려 아뢰었다.

공방이 오랫동안 어려운 직책을 맡아보면서, 농사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한갓 장사치의 이익만을 일으켜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하여 공사가 다 곤궁하며, 더구나 뇌물이 낭자하고 청탁을 버젓이 행하오니, 대저 짐을 지고 또 타게 되면 도둑이 이르게 된다.’=> 재물이 지나치게 많으면 탐내는 자가 나타나게 된다. 한 것은 옛날의 분명한 경계이니 청컨대 그를 면직시켜 욕심 많고 더러운 자를 징계하옵소서.”=> 공우의 상소문의 내용: 돈으로 농사를 등한시 하고 부정한 뇌물이 성행하는 폐단이 나타났으니 화폐를 유통을 막아햐 함.

이때에 정사를 맡은 자 중에 곡량(穀梁)의 학문으로 벼슬에 나아간 이가 있었는데, 군자(軍資)를 맡아 장차 변방을 막는 방책을 세우려 하니, 공방이 하는 일을 미워하였다.=> 백성들이 돈을 중시해 농사를 소홀히 함으로써 군사자금이 부족한 상황에 대한 비판.

그자가 공우의 말을 도우니, 임금이 그 아룀을 받아들여 공방은 마침내 쫓겨나게 되었다.

(중략)

()나라에 화교(和嶠)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공방에 대한 얘기를 듣고 기뻐하며 사귀어 큰 재산을 모았다. 화교가 공방을 사랑하는 것이 큰 버릇이 되니, 노포(魯褒)가 논()을 지어 화교를 비난하고 그릇된 풍속을 바로잡았다. 화교의 무리 중에서 오직 완적(阮籍)만은 성품이 활달해서 속물(俗物)을 즐기지 않았는데도 공방의 무리와 어울려 술집에 이르러 때로는 취하도록 마셨다. 왕이보(王夷甫)는 입에 일찍이 공방의 이름을 담지 않고 다만 그것이라 일컬었으니, 공방이 깨끗한 자에게 비천하게 여겨짐이 이와 같았다. => 왕이보는 돈이라는 말을 입에도 담지 않을 만큼 돈을 미워했다.

()나라가 일어났다. 유안(劉晏)이 나라의 재산을 관리하는 탁지판관(度支判官)이 되었는데, 당시 국가의 재산이 넉넉하지 못했으므로, 임금께 청하여 다시 공방의 방법을 써서 나라의 씀씀이를 편하게 하자하였으니, 그의 말이 식화지(食貨志)*에 있다. 그러나 그때 공방은 죽은 지가 이미 오래였고,=> 돈이 유통되지 않는 상황 그 제자로서 사방에 흩어져 있는 자들이 다시 쓰이게 되었다. 그 방법이 개원(開元천보(天寶)*의 즈음에 크게 행하여위에서 조서(詔書)를 내려 공방에게 조의대부소부승(朝議大夫少府丞)의 벼슬을 추증하기까지 하였다.=> 돈이 다시 유통되게 되었다.

 

남송(南宋) 신종조(神宗朝) 때에 왕안석(王安石)이 나라 일을 맡아보면서 여혜경(呂惠卿)을 끌어 함께 정사를 도왔는데, 청묘법(靑苗法)*을 세우니 천하가 떠들썩하여 아주 못살게 되었다. => 청묘법으로 인해 돈이 대량으로 유통되자 나라가 혼란스러워 짐. 소식(蘇軾)이 그 폐단을 극론하여 그들을 모조리 배척하려다가 도리어 모함에 빠져 귀양 가게 되매,=> 돈의 폐단을 물리치려다 오히려 모함에 빠져 귀양을 감. 그로부터 조정의 인사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사마광(司馬光)이 정승으로 들어가 그 법을 폐하기를 아뢰고 소식(蘇軾)을 천거하여 쓰니, 공방의 무리가 조금 세력이 감쇠되어 다시 성하지 못하였다. 공방의 아들 윤()은 경박하여 세상의욕을 먹었고, 뒤에 수형령(水衡令)이 되었으나 장물죄(臟物罪)가 드러나 사형되었다고 한다.

 

- 임춘, 공방전(孔方傳)

 

 

공방의 부정적인 성격

1. 표리부동하고 처세에 능하다. 비루하고 염치 없음. 이익만 바라보고 행동해 비윤리적인 인간 관계를 조장=> 화폐 제도에 대한 부정적 시각

 

2. 나라의 근간인 농업을 위태하게 만듦=> 농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관

 

3. 매관매직으로 관료 사회를 타락, 사회를 혼란하게 함=> 부패한 관료 사회에 대한 비판

 

*돈에 폐단에 대한 글쓴이의 비판적인 인식

 

공방의 이중성

=> 공방은 둥글고 구멍이 모나게 뚫린 엽전의 생김새에서 나온 명칭

겉은 둥글해 원만해 보이지만, 속은 모나고 악하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생김새를 통해 돈의 이중적 기능을 보여준다.

돈을 통해 상업의 발전을 촉진했지만,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여 인간과 사회를 전반적으로 타락시킬 수 있다고 암시.

 

주제: 돈의 폐해에 대한 경계와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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