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상관물과 감정이입
객관적 상관물
객관적 상관물은 문학 작품의 다양한 표현방식 가운데 하나로 글쓴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감정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물의 특징이나 모양, 행동 등에 의미를 부여해서 자신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담아내는 표현 방식을 이야기 한다.
일상생활의 개인적 감정이 문학 작품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과는 상식적으로 직접적 관계가 없는 어떤 심상, 상징, 사건 등에 의하여 구현된다는 입장이다. 즉, 개인감정의 예술적 객관화가 강조된 것이며, 이러한 객관화를 위하여 이용되는 심상, 사건, 상징 등이 바로 객관적 상관물이다.
예를 들면 윤동주의 대표작인 ‘별 헤는 밤’의 맨 마지막 행에는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에서의 ‘벌레’는 ‘자신의 이름이 부끄러운 것을 슬퍼하기 때문에’ 우는 것이라고 쓰여 있지만 ‘벌레’는 부끄러움을 알고 그것을 이유로 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시를 읽는 독자는 이러한 표현을 보고 시적 화자의 심정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벌레가 자신의 이름이 부끄러워서 운다고 ‘느끼는 것’은, 다름 아니라 시적 화자가 자신의 이름에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점 말이다. 시적 화자는 벌레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라는 구절을 쓰게 된 것이다.
여기서 바로 이 ‘벌레’가 ‘객관적 상관물’이 된다. ‘벌레가 운다’라는 행위는 상식적인 선에서는 어떠한 감정적인 이유도 댈 수 없는 객관적인 현상이지만 벌레의 울음소리를 듣는 시적 화자가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가에 따라서 이러한 객관적인 현상을 자신의 감정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에서 글쓴이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작품의 흥미와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객관적 상관물은 이러한 위험을 피해가면서도 글쓴이의 감정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표현 수단이며, 이런 까닭에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자주 활용되는 표현 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문학 작품에는 항상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이 개입된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읽는다면,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들을 파악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감정 이입
감정 이입이란 소재에 화자의 감정을 집어넣는 표현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 이입 주체와 대상은 동일한 감정을 지니게 된다. 이에 비해서 객관적 상관물은 감정을 표현하는데 동원된 사물, 정황, 사건일 따름이다. 따라서 객관적 상관물은 드러내고자 하는 사물의 감정과 주체의 감정이 일치할 필요가 없지만, 감정 이입은 객체와 주체간의 감정의 동조, 일치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길가의 나무도 기분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춘다.”는 표현에서 나무는 객관적 상관물이고, 이러한 표현 자체는 감정 이입이 된다. 그러나 “길가의 꽃이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드는구나.”라는 표현에서는 꽃은 객관적 상관물이지만 이 표현 자체는 감정이입은 아니다.
시에서도 감정을 다른 것과 함께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감정이입이지요. 시적 화자의 감정을 다른 대상에 이입하여 마치 대상이 화자의 정서를 함께 느끼는 것처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백석, 「여승」 중에서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김소월, 「초혼」 중에서
백석의 「여승」에서 “산꿩도 섧게 울은”이라는 말에서 ‘섧게’는 ‘서럽게’를 줄인 말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산꿩이 서러워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요. 산꿩은 서러움을 느끼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산꿩이 시 속 상황을 이해하고 서러움에 빠지기는 더욱 힘들겠지요. 따라서 산꿩이 서럽다는 것은 시적 화자가 느끼는 서러움을 산꿩에 이입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김소월의 「초혼」에서 사슴의 무리가 슬피 운다고 했지만 사슴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인간이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슬프다는 감정은 시적 화자의 정서를 이입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 의인법으로 표현된 것들도 감정이 이입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객관적 상관물 :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주는 대상
자, 이제 감정이입과 구별이 잘 안 되는 ‘객관적 상관물’을 살펴봅시다.
객관적 상관물은 화자의 감정이나 생각을 주관적으로 바로 드러내지 않고 다른 대상이나 정황에 빗대어 표현할 때, 그 대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슬프다는 말을 직설적으로 쓰지 않고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구슬프게 내리는 비’를 동원할 때 바로 ‘비’가 객관적 상관물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정이입에 사용된 표현들은 모두 객관적 상관물이 됩니다. 백석의 「여승」에서의 ‘산꿩’과 김소월의 「초혼」에서의 ‘사슴’은 감정이입의 대상이기도 하고 객관적 상관물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입과 객관적 상관물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객관적 상관물 중에는 감정이입이 아닌 것들도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객관적 상관물은 화자가 어떤 정서를 느끼게 되는 계기를 제공해 주는 대상을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즉 화자가 느끼는 감정과 같은 감정을 갖지 않더라도 그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라면 객관적 상관물로 볼 수 있지요.
우리 집도 아니고
일가 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용악,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중에서
시적 화자는 고향이 아닌 곳에서 침상도 없이 비참하게 운명하신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화자는 자신의 쓸쓸하고 힘겹고 외로운 정서를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지요. 따라서 풀벌레 소리는 화자의 정서를 직접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화자가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느끼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풀벌레 소리에 감정이입이 직접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화자의 정서를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는 객관적 상관물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객관적 상관물은 감정이입을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감정이입 외에도 화자의 정서에 기여하는 모든 대상이나 정황 들을 포괄하는 보다 넓은 범주의 개념이라고 보면 됩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감정이입은 슬프다, 기쁘다, 자랑스럽다 등등의 감정을 드러낼 만한 표현이 있는 경우이고, 그런 말이 직접 드러나지 않은 채 감정을 일깨우는 대상이나 정황이 존재하면 그것은 객관적 상관물로 보면 되는 것입니다.